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7월 7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는 두 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은 부천의 시민사회가 꾸린 ‘부천원종종합복지관의 성차별·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마련한 것으로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이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책위는 또, 인권침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복지관 측에 밉보인 계약직 직원에게 통지된 ‘계약만료’에 대해서도 ‘보복성 해고’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오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복지관은 대책위의 주장에 대해 “작게 시작된 일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그리고 소모적인 투쟁을 중단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관의 공동조사를 통해 인권침해 여부를 밝히자고 제안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복지관은 문제가 된 발언이 “복지관의 일상적인 소통의 문화였고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복지관은 “원종복지관과 일부 직원들에게 행해진 무차별적인 허위사실과 인권침해 행위에 따른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부천시민사회가 중재를 시도하는 등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복지관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복지관은 당사자 간에 사과와 화해가 이루어졌다며 대책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와 대책위 측은 납득할 만한 사과는 없었다며 반박하고 있다. 해직 직원에 대해서도 복지관은 “사업방식과 맞지 않아서”라거나 예산상의 이유 등을 들어 계약해지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최근, 시민대책위는 원종종합사회복지관 앞에서 매일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의 좌측이 부당해고 의혹이 제기된 이은주 사회복지사, 우측은 권오광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다. (사진제공: 시민대책위)

이러한 시점에서 문제가 된 발언의 피해자인 조재화 사회복지사가 지난 8월 17일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글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복지관의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등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그간 진행돼 왔던 상황을 세세하게 담은 것이어서 복지관의 반응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개미뉴스>는 조재화 씨의 글 전문을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글의 의미와 취지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교정교열이 있었음을 밝힌다. (편집자)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 “엄마로서 당연한 이유”

복지관에서 발표한 기자회견, 반박 보도자료를 보았다. 이 사건을 처음 보고했을 때 나는 임신초기였다. 하지만 임신 7개월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간 나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로 악몽에 시달리는가 하면, 잦은 설사로 인한 탈수증상과 자궁수축 등을 겪고 있다. 다섯 살 딸아이는 엄마를 단연 최고로 여긴다. 그런 아이가 요즘 나의 기분을 살피는 등 눈치를 보는 행동을 한다. 시작부터 축복받지 못한 뱃속의 작은 생명은 엄마의 힘든 상황과 모든 감정을 작은 몸으로 오롯이 이겨내고 있다. 

어렵지만, 내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엄마로서 지극히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떳떳하게 일하고 싶었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 때문에 직장에서 일어난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그리고 5살 딸아이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사회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난 잔 다르크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다. 사실, 이 상황이 누구보다 힘겹고 두려운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문제가 빨리, 그리고 정상적으로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겪었던 일과 심경을 이렇게 밝힌다.

나에겐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농담’

사무실에서 부장님이 직원들과 농담을 했든 어쨌든, 나는 ‘농담’이라는 단어로 이 문제를 치부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받은 충격과 공포가 농담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는 게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아니,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오히려 ‘농담’이라는 말로 조롱당했다. 모 팀장이 전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부장님이 어제 오셔서 가임기여성은 잘라야 한다고 했어요. 선생님, 부장님 면접 볼 때 가정 일로 피해 안준다고 했다던데. 조금 이따 부장님 오시니 독대하게 생겼어요.”

나는 복지관 행사장에 나타난 부장님에게 찾아가 고개 숙이고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을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내가 인사를 하며 왜 죄송하다는 말부터 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당당하게 “저 임신했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인사를 하자 부장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얘기 들었어. 그럴 거면 육아휴직을 다녀오지 말던가. 지금 돈 없어서 있는 직원도 자를 판인데. 조재화 선생 들어가도 난 사람 안 뽑을 거니까 알아서해. 안 그래도 어제 사무실에서 가임기 여성 자른다는 말을 했어”

지금도 이 말을 하던 부장님의 표정, 말투, 분위기, 숨소리까지 모든 게 생생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고 어떻게 그 자리를 마무리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로지 그 순간만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나의 임신이 이렇게 축복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난 어떻게 직장생활을 이어갈 것인가.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인지.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두려운 마음에 화장실로 달려가 보니 피가 비쳤다. 아…. 나는 이 상황을 팀 동료에게 전했고 이은주 선생님은 내 표정과 안색을 살피더니 사무실에 들어가서 누워있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다.

일개 평직원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부장님의 발언을 문화센터에 근무하는 동료들과 상의했고 동료들은 부장님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선생님은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여러 가지 말이 오갔다. 나는 부장님의 발언에 대해 관장님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동료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다음 날, 팀장님은 직급체계를 따라야 한다며 자신은 부장님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단체로 관장님을 만나는 것은 단체행동이고, 단체행동을 할 경우 사표를 쓰고 만날 각오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부장님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부장님과의 문제를 당사자인 부장님에게 보고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라며 팀원들에게 호소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또 부장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갖은 훈계를 듣고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이상한 상황이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오겠지. 그래서 나는 “기관에서 일어난 일이고 이런 일이 재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관장님에게 보고하고 싶다”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이때, 이은주 선생님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 바람에 팀장님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은주 선생님은 “왜 관장님을 만나는 것이 단체행동이고 사표를 써야하는 일이냐”고 했다. 하지만 결국, 팀장님은 이런 상황을 부장님께 전했다. 부장님은 그 얘기를 듣고 오히려 화를 냈다고 했다.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의 사건이 있고 엿새 후인 4월 23일, 나는 이은주 선생님에게 이 일을 관장님께 알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과 이로 인한 좌절감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관장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관장님은 이번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주실 것이다. 나는 관장님에 대해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이때 이은주 선생님이 “그러면 내가 관장님께 메일을 보낼까?”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고맙죠”라고 대답했다. 이은주 선생님은 부장님의 발언내용과 함께 사과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메일을 관장님께 보냈다. 

일주일 후, 관장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누구보다도 나는 이 문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관장님과 가진 면담에서 복지관 행사장에서 모 팀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말과 부장님께 직접 들은 말을 전했다. 하지만 면담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관장님은 “부장이 지금 암투병중이고 상황이 좋지 않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부장은 그런 말은 안했다고 하더라. 단 복지관의 재정이 어렵고 조재화 선생이 육아휴직을 다녀 온지 얼마 안 됐으니 직원들에게 잘하라는 의미의 말을 했다고 한다. 부장이 팀 내에서 자신을 대상화해서 이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 많이 화가 나 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내 말은 철저하게 무시된 셈이다. 

나는 임산부이고 직급도 없는 평직원에 불과하다. 내가 무슨 이유로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며 기관의 최고 간부인 부장님을 모함하겠는가. 그리고 그 상처를 안은 채 며칠씩 고민하며 겨우 관장님께 드러내 보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관장님은 문제의 해결보다는 부장님의 건강 상황을 앞세워 이 문제를 무마시키려 했다. 부장님이 말한 의도는 그게 아니었고, 우리는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오해를 풀라고 했다. 

난 실망스러웠지만 그 자리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관장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상황에 얽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 문제가 언제쯤에나 끝날 수 있을까. 사실관계를 놓고 벌이는 이 진실게임에 끝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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