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전)노동당 정책위원 노동당 생태평화위원회 운영위원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시간에 관계된 규율을 잘 지키도록 교육합니다. 지각, 조퇴, 결석 이런 것을 하지 않은 학생에게 개근상을 주어서 칭찬합니다.

가정에서도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 되게 훈육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육에 순응하는 학생들은 항상 긴장하면서 학교 교육을 수용하여 성실한 학생으로 인정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 자기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누가 시킨다고 규칙이라고 억지로 견디면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덜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사람의 타고난 본능, 본성은 사실은 자연에 속하는 것일 텐데, 여기에는 잠을 충분히 자고 싶고 충분히 쉬고 싶은 욕구, 의미를 찾지 못하고 따분한 일은 피하고 싶은 욕구, 하기 싫은 일을 강제하는 사람에게 반발하는 성향,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이를 참고 억누를 힘을 발휘하면, 극기(克己)하는 것이 되고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상 철광석을 가져다가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 내고, 이를 순도 높은 철로 가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성실하고 항상 긴장된 삶을 사는 사람이나 순수한 철 원료는 자연과는 거리가 멀어진, 많은 노력을 통해서 가치 높게 이용될 수 있는 상태로 가공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문명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문명인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문명인은 자연 상태에서 오랜 기간을 생존해 온 인류의 조상 격에 해당하는 자연인들, 야만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비해 몸이 약하고 정신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늘 피곤하고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신경이 예민합니다.

자연인들은 시간관념이 정확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따분한 일을 하는 것은 견디지 못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앞장을 섭니다. 이런 인간상은 산업사회의 노동력으로서 적합한 임금노동자의 상(像)이 결코 아닙니다.

산업사회가 자연을 무질서하고 불확실하고 위험스러운 정복하고 격리해야 할 대상이자 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자연의 본성과 본능을 타고난 사람을 그렇게 굴복시키고 산업의 목적에 맞게 가공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종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 안에서 힘을 합쳐서 자연의 조건들을 잘 이용하고 자연에 적응하여 상호부조의 관계 속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권역 내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고 물자들을 만들어 시장에서 사고팔면서 그 권역 내의 물질순환 구조를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권역의 지형과 계절별 자연의 변화, 식생에 대해서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에 적응하고 이를 이용하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체득합니다.

이에 비하여 바깥 환경으로부터 폐쇄된 공장과 빌딩 속 사무실에서 계기판과 컴퓨터의 모니터를 계속 들여다보는 일을 하는 산업 노동자들은 자연의 흐름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들여다보는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같은 회계장표 상으로 기여하는 업무성과를 올리도록 조직을 통해서 그리고 조직 내에서 경쟁을 해야 그 일자리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누구 눈치를 안 보고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임금노동자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윗사람 눈치를 보며 양처럼 순하게 순응하며 과도한 업무지시와 평가에 긴장하면서 피곤하고 지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갑니다. 튼튼한 조직이나 대학교 교직자 같으면 안식년 휴가 같은 것으로 재충전할 기회도 주어지지만, 대부분의 직장인 노동자들은 50대가 넘어가면 건강검진에서 기준을 벗어나는 수치를 기록하는 항목들이 생겨나서 한두 가지씩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역시 건강이 악화되는 원인을 용기 있게 집어치우지 못하고, 약으로 때우면서 몸이 무너져 가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형편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코 옛날 사회주의자들처럼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을 경우에 이렇다 할 방어 대책이 없기에 임금노동자의 노동력은 이처럼 장기적으로 소모품과 같이 쇠퇴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직장의 중간 관리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경로를 밟아 갑니다.

산업에 의한 자연의 소외와 격리와 파괴의 논리는 자연의 한 종류로서의 노동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자연의 생명 순환을 되살려내고 사람들의 생명력을 되살려 내기 위해서는 산업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탈(脫) 산업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삶의 터전에서 벗어난 타지에서 일하는 셋집 신세를 벗어나서 임금을 주는 직장 일에 목을 매야 하는 형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역에서 자영(自營)으로 또는 협동으로 어떤 사업을 장기적으로 하고 자연 생태계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 생태계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살림살이가 안정적으로 형성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셋집을 옮겨 다니며 거주하는 형태를 벗어나야 함은 당연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당연히 그런 사회 생태계를 이루는 데 필요하지만, 주거지에 대해서도 공개념이 도입되어 비슷하게 안정적인 주거지가 보장이 되어야 임금노동자로서 늘 긴장하면서 떨려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정도가 줄어들고 과감하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됩니다.

나라의 정책이 모두 “산업” 진흥에 쏠려 있으니, 자연에 적응해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아무런 장려도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자연 속의 터전을 등지고 도시와 산업단지에서 생활하기 위해 학교를 통해서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

사람이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일터와 도시형 생활방식에 익숙해집니다. 이것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형편도 안 되고, 도시에서 자영이나 협동의 사업을 영위할 형편도 안 되고, 산업에 포획되어 계속 자연을 수탈하는 동시에 전 세계적인 분업체계 속에서 자기 나라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입장에서, 또는 착취당하는 입장에서 살면서 비(非) 산업적인 세상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산업현장의 일터와 일하는 방식이 노동자들에 미치는 건강상의 영향에 대한 각성이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생태환경과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이 모두 다 생명에 속한다는 생각에서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철폐가 시작되고 인간과 비인간, 내국인과 외국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의 차별을 유지하는 산업 질서에 대한 도전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성과 속의 구별, 청결과 불결의 구별을 고수하는 유태-기독교 계통의 종교, 서구의 근세 이후의 휴머니즘과 자본주의라는 세 기둥은 자연에 대한 차별, 이민족, 이교도에 대한 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을 통해 산업사회의 기초를 제공했지만 이제 이런 차별에 기초한 사회질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 혁명이 시작될 수는 없고 산업 질서의 실체가 파악되어 이에 대한 도전과 탈피의 시도가 많아질 때,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가공되어 사람들의 온전한 인간됨을 왜곡시켰는지에 대한 질문과 인식이 확장되면, 학교 교육의 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보편화될 것입니다.

그 방향은 자연과 닮은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될 것이고, 자연의 순환질서에 적응하고 이를 이용하는 지혜를 키우는 방향이 될 것이고, 더 이상 공장이나 사무실의 폐쇄된 공간에서 따분하고도 스트레스 심한 작업방식을 견디는 인성을 함양하는 것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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