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사무국장

지난 7월 10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민사합의 46부, 부장판사 지영난)는 교통약자들이 제기한 시외이동권 보장 소송에서 장애인들이 시외버스를 탈 수 없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며 버스 사업자인 금호고속과 명성운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버스 사업자에 휠체어 탄 장애인 등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도입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노인·영유아 동반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경기도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에 따라 시외·고속버스에 대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부분은 기각했다. 결국 재판부는 민간사업자의 책임에는 장애인계의 손을 들어줬지만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은 기각함으로써 면죄부를 쥐어주는 모양새를 만들고 말았다. 

시외이동권 문제로 새삼 조명되고 있지만 사실 교통약자, 특히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길고도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은 교통약자법 시행과 더불어 9년간 각 지자체별로 도입이 진행되고 있지만 9년간의 성과라고 하기에 그 성적표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현황(단위 : %, 대)

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07년∼2011년)이 완료된 시점의 저상버스 도입율은 전국 평균 12%에 불과했다. 당초 국토부의 5개년 계획이 전체 버스의 50%를 저상버스화 하는 것이었는데 중앙정부의 계획대비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2년∼2016년)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목표치를 전체 버스의 40%를 저상버스화하는 것으로 1차 증진계획 때보다 오히려 후퇴시켰다. 정부차원의 목표상향과 정책지원이 절실한 시점에 오히려 목표를 하향조정하면서 저상버스 도입 의지를 스스로 꺾은 것이다. 그 결과 2014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율은 18.7%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인천시의 경우 12.1%로 전국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으며 7대 특별.광역시도 중 저상버스 도입율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인천시는 당초 계획되어 있던 저상버스 70대분의 예산을 대폭삭감하고 38대만을 도입키로 결정해 타 시도와의 저상버스 도입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저상버스 도입율이 목표치를 밑도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는 데는 정부의 의지부족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조차 목표치인 40% 도입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예산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며 1차 증진계획에서 도입율이 매우 저조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할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반성 없이 2차 증진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버스회사에 저상버스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저상버스 도입에 필요한 국비지원액을 상향조정하는 등의 정책적 유인책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도입 목표치를 하향조정하면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역행적 정책을 내놓고 만 것이다. 

저상버스 정책이 지자체와 버스회사로 부터는 물론 정부로 부터도 홀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저상버스 정책을 교통약자를 위한 별개의 교통수단으로 사고하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천의 경우 교통약자 수는 2014년 기준 72만1천927명으로 인천시 전체 인구의 24.9%에 달한다. 절대적 숫자로 봐도 절대 소수가 아니다. 더군다나 최근 대중교통정책은 시내버스 무상화 정책과 같은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는 버스요금 무상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들고 나와 주목받은 바 있다. 선거 이후에도 여러 매체와 언론을 통해 에스토니아의 무상버스 정책이 지역경제와 교통정책에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버스정책이 단순한 교통정책을 넘어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다루어진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대중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안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는 최근 전남 곡성군이 1,000원 버스를 도입해 군내 어디든 1,000원의 단일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정책적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시민이 저상버스에 승차하고 있다.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는 교통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편리하고 안전하다.

여기서 우리는 요금뿐만 아니라 버스의 안정성, 보편성, 편리성에 기반한 저상버스 중심의 대중교통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한 교통수단이라는 제한적 사고를 넘어 ‘시민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대안적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저상버스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의 특성상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물론이고 모든 시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승하차시의 사고위험도 크게 감소해 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무더워지는 여름철 버스의 가스탱크가 폭발하는 등 잇따른 버스 폭발사고가 있었지만 저상버스의 경우 가스탱크를 버스 하부가 아닌 상부에 장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면에서 발산되는 열을 덜 받아 폭발위험이 낮고 안전하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2017년까지 전체 버스의 55%를 저상버스화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안전한 이동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저상버스 중심의 버스정책 전환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는 대기오염 감소와 친환경정책을 기조로 구형버스를 천연가스버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2000년 초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에만 1만대 이상의 천연가스 버스가 도입되는 등 그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의지와 예산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이면 2차 교통약자 증진계획이 완료된다. 지금까지 도입추세를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저상버스 도입율은 20%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저상버스 도입 10년의 성과치고는 매우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20%의 도입율로는 실제로 휠체어 이용자, 유모차 등 저상버스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의 버스 이용조차 유도하기 어렵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는 버스라면 대중교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상버스 정책을 교통약자 중심 버스정책에서 확장하여 안전하고 편리한 차세대 대안교통수단으로 사고하는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교통약자의 이동권과 시민의 보편적 안전과 편리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정책적 전환을 정부와 지자체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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