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PET)시대

▲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영어 펫(pet) 시대다.

펫(pet)은 1. 반려동물. 2. 못마땅함(특히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불공평할 정도로) 총애를 받는 사람(=favourite). 3. (동물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다(쓰다듬다). 4. 애무하다 (→petting), 5. 부루퉁함, 실쭉함, 약이 잔뜩 오름; 울화. 6. 앵돌아지다. 심술부리다(sulk), 부루퉁해지다 등으로 사용된다.

대문자 펫(PET)은 한국식으로 보면 준말이다.

1. 페트(polyethylene terephthalate) 병을 나타낸다. 음료수 병 등의 제조에 쓰이는 합성수지)를 나타낸다. 2. 암치료 등의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법(positron emission tomography: 두뇌 등의 인체 내부 촬영에 이용하는 방법) 3. 중급 영어 능력 시험(Preliminary English Test: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주관하는 외국어로서의 영어 능력 시험.

버려진 페트병을 철근으로 변신시키는 기술이 나왔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는 건설공사에 쓰이는 철근을 대체할 수 있는 ‘K에코바’를 올해 말부터 생산한다고 밝혔다.

K에코바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GFRP)으로 만든 보강근이다. 철근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이지만 강도가 2배 단단해 시공 및 운송이 쉽다.

K에코바에는 유리섬유를 보호하는 함침제가 30%가량 포함돼 있는데, 그 원료가 바로 페트병이다.

SK에코플랜트는 “2ℓ 페트병 한 개로 K에코바 1m(760g)에 들어가는 함침제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연간 K에코바 20만t을 생산한다면 페트병 3억 개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는 플라스틱의 시대로, 지구 파괴의 주범이다.

현대인 의식주에서 플라스틱이 빠진 곳은 거의 없다. 플라스틱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의 장점은, 다양하게 모양을 낼 수 있고 내구성이 좋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다.

치명적 단점이 있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시키고, 다 쓰고 난 뒤 버려도 분해되지 않아 계속 쌓인다. 대기와 물, 땅을 오염시키고 인간과 동물 체내에 축적돼 생태계를 교란한다. 미세 플라스틱은 지구 생태계를 마비시킨다.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최근엔 인간과 지구를 해치는 주범으로 여겨진다.

플라스틱의 개발은, 귀족 스포츠였던 당구의 대체재 찾기에서 시작한다.

14세기 프랑스 상류층에서 인기를 끌었던 놀이였던 당구는, 자갈이나 나무를 동그랗게 깎아 당구공으로 썼다.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인도 진출 이후 당구공 재료로 등장한 것이 코끼리 상아였다. 상아 한 개로 만들 수 있는 당구공은 3개다. 상아는 다른 곳에도 수용가 몰리면서 상아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코끼리는 그만큼 죽어갔다.

당구대 제조사 대표 미국인 ‘마이클 펠란’이 상아를 대체할 신소재 공모 광고를 1863년 뉴욕타임스에 냈다. 개발자 중 한 명이 인쇄업자 ‘존 하이엇’이었다. 3년여 실험 끝에 성공한다.

그때 나온 재료가 세계 첫 플라스틱 셀룰로이드다.

플라스틱은 20세기 이후 눈부신 진보를 거듭했다. 가장 각광받은 재료가 1930년대 실험실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폴리에틸렌이다.

2차 세계대전 중 군용물질로 분류돼 항공, 무기 재료로 쓰였다. 전쟁이 끝나자 일상용품 원료로 광범위하게 쓰였다. 페트(PET)병이 대표적이다.

미국 듀폰사 직원은, 1974년 탄산음료 압력을 견딜 수 있는 플라스틱병 개발에 나섰다. 쌀알 크기의 페트 칩을 녹여 프리폼을 만든 뒤 가열된 금형 속에 넣고 공기를 불어넣어 페트병을 완성했다. 코카콜라는 페트병에 상업음료를 담은 첫 회사다. 1978년 2L짜리 코카콜라 페트가 처음 출시됐다.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구 파괴 주범이 된 페트병은 전 세계에서 분당 100만 개꼴로 팔린다. 하지만 페트병 하나가 자연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장장 500년이다.

태우면 독성물질이 나오고, 내버려두면 바다와 땅이 썩는다. 10%대 재활용률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가 플라스틱 사용 감축과 재활용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주요 기준으로 대두되면서 기업들도 다양한 폐플라스틱 재활용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온 것이 플라스틱병 재활용이다.

페트병에서 뽑아낸 실로 의류나 가방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현대건설은 플라스틱 화장품 빈병을 잘게 부숴 콘크리트와 혼합한 테라조 타일을 생산키로 했다.

이제는 버려진 페트병을 철근으로 변신시키는 기술까지 나온 것이다.

한편으로 환영하고, 한편으로 불안하다.

K에코바는 제작 과정에서 탄소도 철근보다 절반 이상 적게 배출된다지만, 다 쓰고 난 뒤 폐기할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다. K에코바를 구성하고 있는 유리섬유와 플라스틱 성분은, 철근보다 분해 기간이 훨씬 더 길다.

4월 22일은 52번째 지구의날(Earth Day)이다.

100년을 채 못 사는 인간이 46억년 지구별에 해만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신기술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