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무 노동당 정책위원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마을 자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마을 공화국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라는 것은, 사실 농촌에서는 가장 오래된 생활과 경제활동의 구조입니다.

독일에서는 마르크조합(Markgenossenschaft)이라고 하는 마을 공동체 경제의 구조가 경제사에서 개념화되어 있습니다.

경작지는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유재산이고 목초지, 삼림 등은 공유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마을 공동체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경작지는 수조권(收租權)과 경작권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주와 농민 간의 구분으로서, 이 역시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란과 난민행렬을 보면, 이러한 마을공동체는 평화 시에는 얼마든지 자치 공동체로서 발전할 수 있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침략군이 그 마을에 들어올 것이 예견되면, 그 침략군들을 환영할 준비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살던 집을 버리고 그 마을을 떠나야 합니다.

그냥 평상시처럼 태연하게 생활하다 보면, 점령군이나 숨어 있는 그 반대 측에 의해 늘 감시를 당하고 운이 없으면 목숨을 잃고 땅을 빼앗길 위험이 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마을 공동체는 마냥 정겹고 인간적인 안전한 터전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20세기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조상 때부터 오랫동안 살아온 농촌마을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급속히 높아져 왔고, 많은 사람들이 신분이나 개인적 성향이 노출되는 농촌의 마을 공동체를 피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로 이주해 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는 급속한 공업화에 의한 이농현상의 영향만이 아니고, 6.25 등의 전쟁과 국가폭력의 체험에서 나온 신변 안전을 위한 대비책의 성격도 없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91%를 넘는 도시인구는 해당 도시권역에서 이웃들과의 교류를 최대한 삼가는 가운데, 언제든지 이사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서 실제로 몇 년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 가며 살아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이에는 도시계획과 개발 등의 방식, 높은 주택가격과 같은 대도시 지역의 전형적인 주택, 토지문제와 깊이 연관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잦은 생활터전의 이전으로 도시에서는 마을 공동체란 의식이 자리 잡기가 어렵게 되고, 이와 동시에 옮겨야 하는 세간을 간소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사할 때마다 많은 물건들이 처분대상이 되어야 하는 유목민들의 생활방식이 보편화되고, 지역 특색이 사라지고, 문화적으로 다양성이 없어지고 대자본, 대기업의 충실한 소비자를 만드는 상업문화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전쟁 중 무차별한 민간인 공격 -> 아군과 정부에 의한 주민에 대한 국가폭력 -> 사유재산 중심의 민법체계에 의한 공유재산의 소멸 -> 공업화와 도시화 정책 -> 정부와 금융과 건설 자본에 의한 도시개발에 의해 마을 공동체는 거의 소멸된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로, 오랜 정착생활과 문화형성에 의해 가능한 지역의 자생적인 마을 순환경제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정부나 자치단체의 뒷받침에 의존하여 겨우 형성되고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전 세계 어느 국가이든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위하여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고 이에 반대되는 의견들을 억누르고 있으며, 시민들의 자주적인 목소리가 힘을 잃고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시민, 주민은 국가가 어항의 물고기처럼 집어넣었다 꺼냈다 하는 애완용도 아니고 대자본에 의해 이리저리 몰리면서 그들의 돈을 벌어주는 수단도 될 수 없다는 인권선언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순환경제는 불가능하고, 문화는 척박해지고, 물건들은 계속 낭비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쟁을 불사하면서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 시스템. 그러면서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국가 시스템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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